포기하기.

2008/10/08 17:38 | Posted by 아이누린달레
아이들을 학교에 처음 보낼 때 제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더랬습니다.

'학원은 보내지 말자. 최소한, 지들이 원한다면 보내지만, 내가 보내지는 말자'

'공부하라고 닥달하지 말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만 주자'

네...

저 약속,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 학원 안 보내는 대신 제가 공부 봐주기로 했지만, 제대로 못 봐줬고...
아이들도 친구녀석들 학원 다니는 걸 보더니, 가보겠다고 그래서...

보내야 하나 갈등하면서... 지난 겨울, 결국 보냈습니다.

전과목 학원 두 달, 수학 전문학원 한 달 정도 다니더니...

녀석들, 학원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 보다는 놀이터에서 노는 게 더 좋았나 봅니다.
그만두겠답니다?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대신 우리 부부에게 서로 조건을 붙였습니다.
수학은 제가, 다른 과목은 마눌님이 봐주기로요...

이거, 다른 자식은 가르쳐도 제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옛 말 하나도 틀리지 않더군요.

원래 진득히 공부에 관심이 없던 녀석들이 우리 부부가 가르친다고 관심을 가질리 만무...

녀석들을 야단치는 빈도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제 때 숙제를 안 하네, 공부하지 않고 딴 짓만 하고 있네...

공부로 야단을 치기 시작하니, 다른 행동들까지도 미워지는 겁니다.

놀러갔다가 늦게 들어오네, 연락도 하지 않고 친구네 집으로 내뺏네... 가지가지 이유로 야단을 치게 된 겁니다.

그러다 문득,

'어라 이게 지금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눌님과 둘이 심각하게 의논을 했습니다.

의논을 하다 보니 등골이 오싹한 겝니다.

녀석들이 하도 야단을 자주 맞으니 틱증상까지 나온다는 겁니다...

둘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포기하기로요.

공부, 포기하자. 지들이 원해서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런 방식으로 계속 하다간 애들 잡겠다...

야단도 그만 치자.

그 결정을 아이들에게 통보했습니다.

정말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한 지 한 달 정도 흐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틱증상, 없어졌습니다.

느물거리던 큰 녀석의 밝은 얼굴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까불대던 작은 녀석, 두 배로 더 까불대고 있습니다...

아, 이게 본래의 모습이구나,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나 왈칵 했습니다.

녀석들에게 정말 미안했지요...

그제는 퇴근했더니 큰 녀석이 뽀뽀를 합니다. (늘상 하는 뽀뽀입니다..) 작은 녀석도 뽀뽀를 합니다.
마눌님도 뽀뽀를 합니다.

큰 녀석이 뽀뽀를 또 합니다. 작은 녀석도 또 합니다. 마눌님이 두 번 합니다.

큰 녀석이 세 번 합니다. 작은 녀석도 합니다. 마눌님이 다섯 번 합니다.

어라. 경쟁이 붙었습니다?

큰 녀석이 아빠 입술은 자기꺼랍니다. (작은 녀석은 엄마가 자기꺼랍니다....이놈...)

5학년 짜리 한테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째집니다.

포기하기.

포기해서 다시 집안에 웃음이 돌아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